오늘 아침은 건강검진 때문에 쫄쫄 굶은데다 점심으로 들어간 식당이 안타깝게도 배고픔을 보상해줄 만큼 맛있지가 않았다. 남편은 치즈돈까스를 시켰는데 허여멀건한 모짜렐라 치즈를 품은 고기 단 네 덩어리가 접시에 담겨 나왔을 때 그의 표정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아... 그럭저럭 먹을만 했던 돌냄비우동을 먹은 나는 저녁은 작정하고 푸짐하게 차려야만 했다.
마트에서 루꼴라와 치즈, 바질페스토, 홀토마토 통조림, 손질된 삼치 한 마리를, 시장에 들러서는 시금치와 연근을, 공판장에서는 단호박과 우엉을 샀다. 한 군데서 살 수도 있었지만 플라스틱과 비닐을 가급적 덜 쓰고 가격과 상태가 괜찮은 품목들을 고르느라 발품을 팔았다...는건 그럴듯한 핑계고, 나는 단순히 장을 볼 때 제일 행복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만 걸음쯤 걸어서 피곤해진 다리를 끌고 빵집에도 들렀다. 바게트와 루꼴라, 치즈, 바질페스토는 내일 아침 샌드위치가 될 거고 시금치는 오늘의 국과 내일의 커리가, 단호박으로는 커리에 곁들일 고로케를 만들어볼 참이고, 나머지는 오늘 저녁거리가 될거다.
다시마와 멸치로 육수 먼저 끓였다. 물방울이 뽀글뽀글 올라오면 다시마는 먼저 건지고 멸치만 진하게 우려낸다. 무를 자박자박 썰어 냄비에 깔고, 아가미(?) 부분을 뜯어내고 깨끗하게 씻은 삼치를 먹기좋게 토막내서 그 위로 올렸다. 고추장, 된장, 고추가루, 매실청, 피쉬소스, 간장, 다진 마늘, 다진 생강, 그리고 다진 파를 듬뿍 넣어 양념장을 만들고 아까부터 끓고 있던 멸치육수를 자박하게 부어 삼치조림 먼저 불에 올렸다.
멸치를 건져낸 육수에 된장을 풀고 시금치를 먹기 좋게 썰어 넣는다. 두부나 감자를 넣을까하다가 귀찮아서 관뒀다. 인터넷으로 우연히 알게되어 새로 산 된장은 속리산인가 어딘가에서 옛 방식으로 만드셨다는 재래된장인데 우리 입맛에 맞아서 참 좋다.
연필처럼 돌려깎은 우엉과 납작하게 썬 연근을 식초물에 데치고, 채썬 당근, 우엉, 연근, 그리고 말린 표고버섯을 며칠 전 만들어둔 가쓰오부시 육수와 끓였다. 간장과 쯔유를 적당히 섞어 간을 하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면 좀더 끓였다가 불을 끈다. 쌀을 씻어 냄비에 안치고, 간장에 살짝 조린 채소들과 그 국물을 붓고 밥을 지었다.
냉장고에 있던 참나물은 줄기 째 먹기 좋게 썰고 올리브오일, 레드와인 비네거, 소금으로 간한 드레싱을 미리 만들어 재료들이 잘 섞일 수 있도록 했다. 먹기 직전에 가볍게 무친다.
한소끔 끓인 삼치조림은 간이 맞는 듯 해도 시간이 지나면 무에서 수분이 많이 나와 좀 싱거워진다. 맛술이랑 국간장 살짝 넣고 뚜껑 열고 보글보글 끓였더니 국물이 졸아들어 간이 딱 맞았다.
남편이 집에 오면 뜸들이던 냄비밥 뚜껑을 열어 채소와 밥을 고루 섞고 상을 차린다. 엄마가 준 매실장아찌도 그릇에 담았다. 식탁에 앉아 보드라운 삼치살과 채소-특히 향이 정말 좋았던 우엉-에 감탄하면서 맛있게 먹는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는데 우리 둘 다 동의한다. 치즈돈까스로부터 받은 상처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기를. 내일은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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