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엔 저녁을 일찍 먹고 들어와서 테이블에 앉아 남편은 노트북을 나는 요리책을 들여다보며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그 말 없고 평온한 시간을 문득 바라보며 나는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집에 혼자 있거나 개점휴업 상태인 회사에 하릴없이 출근을 하면서 이 넓은 빈 칸을 채울 수 있는 마음가짐이, 마침내 드디어 좀 생긴 것 같다는 뜻이다. 읽고 싶은 책이 계속 줄을 서고, 계절의 채소와 과일을 듬뿍 먹고 사랑을 담아 요리한 음식을 맛있게 먹어줄 남편이 있다. 홍제천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아름다운 산책길을 발견한 건 이번 달 최대의 수확이다. 몸 어딘가에서는 조금씩 아픈 곳이 끊이질 않지만 (심지어 어제는 고추 씨 발라내다가 손끝 피부가 뒤집어졌지.. 애호박이 손톱에 끼는 사고도 발생했다) 그래도 꾸준히 먹어야하는 약봉지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계속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꽤 노력해야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인간관계와 행동 반경이 좁아지더라도 좋은 에너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만남만 이어가고싶다. 그게 사람이든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나이가 든다는 건 좁고 깊어지는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