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절반이 지났다. 덥고 꿉꿉하지만 이 계절에만 보고 먹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 색과 맛과 감상을 소중하게 붙들고 싶어졌다.




요즘 다롱과 나는 하루에 두 번 우리 아파트 벤치에서 시간을 보낸다. 다롱이가 누워서 그루밍을 하는 동안 나는 그 옆에 앉아 집에서 가져온 차가운 커피도 마시고 남편이나 친구를 기다리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벤치가 아롱다롱의 주 활동영역과는 살짝 거리가 있어서 (그래봤자 한 20m..) 그런지 절대 혼자 오는 법이 없고 반드시 내가 있어야 여기까지 온다. 나를 주차장에서 만나면 야옹야옹 거리면서 저쪽으로 가자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엽다..🥹 벤치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 마음에 들었던거겠지? 희한하게 여기 앉아있으면 덥지도 않아.


우리동네 능소화 스팟 - 위에는 운 카페 가는 길, 아래는 마을버스 타러 가는 길. 올해는 확실히 가물어서 그런지 작년만큼 흐드러지게 핀 것 같지가 않았다.

이 날은 라이사님을 오랜만에 만나서 술도 많이 마시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소주가 어찌나 달던지..


여름의 쇼핑리스트 - (대충 시간 순서대로) 살구, 완두콩, 초당옥수수, 토마토, 천도복숭아, 그낭복숭아, 감자, 찰옥수수, 단호박. 한 박스씩 사서 그득그득 쌓아두고 원없이 먹는 재미가 있다. 올해는 공씨아저씨 천도복숭아와 한참 전 예약주문한 냠냠복숭아가 비슷하게 도착해서 매일매일 까먹는게 소소한 행복이었다. 부엌 한 켠에 은은하게 퍼지는 복숭아의 달콤한 향기도.




무언가가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운카페에는 사장님이랑 도란도란 수다떨러 간다. 거의 매일 만드시는 카넬불레는 요즘 어느 경지에 이르른 것 같다고. 아니나다를까 정말 맛있다.

마크로비오틱의 요령으로 만드는 카레와 타코라이스를 배워왔다. 그동안 땀 뻘뻘 흘리며 양파 볶던 지난 날의 나야 미안해.. 내가 만들 수 있는 요리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언니네 만나러 미국 가는 엄마를 데려다드리러 인천 공항 다녀왔더니 휴가가고 싶은 마음이 다 사라져버렸다.엄마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엔 아빠랑 남편이랑 차이나타운 가서 중국집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남편은 일부러 회사에 연차까지 내고 운전기사를 자처했지.. 고맙숩니다.

어느 평범한 날의 저녁 밥상. 양배추 찌고 강된장이랑 곁들였고, 들기름에 들들 볶다 뽀얗게 끓인 미역국. 선생님이 한가득 나눠주신 오이물김치. 복습으로 따라해본 꽈리고추찜. 그리고 햇감자로 만든 전까지! 먹으면서 분명 행복을 느꼈다.

또다른 날의 저녁밥상. 된장찌개와 마파두부에 오이김치랑 오이고추! 오이고추는 된장이랑 콩가루, 비건 마요에 살짝 버무려 먹는다.

여름날의 부엌- 토마토를 무수분으로 폭 익혀두면 요래조래 쓰임이 다양하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생명체

좋아하는 언니들이랑 순대볶음 먹구 공원에서 아이스크림 먹었던 어느 여름밤. 언니들이랑 알고 지낸지도 7,8년쯤 됐나. 나랑 꼭 그만큼 나이차이가 나니까 내가 지금 처음 만났을 때 그녀들의 나이인 셈이다. 오십대 육십대가 되어도 언니들이랑 놀이터에서 하드 먹으면서 수다떨고 싶다.

아라언니가 월급 받았다고 퍼멘츠에서 타코 사줬다. 발효 커리를 스프레드처럼 바르고 구운 채소를 위에 듬뿍 올려서 조화롭고 개운한 맛.

더워도 조금만 더 기운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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