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에는 퇴근하고 다섯시 반쯤 집에 와서 일찌감치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엄마랑 티비를 보거나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거나 책을 봤다. 그러면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밤 열시쯤 전화를 했고.. 그래서 엄마는 남편을 열시의 남자라고 불렀다. 열시의 남자와 한두 시간쯤 통화를 하다가 잠들고, 새벽 여섯시 오십분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는 그런 일상.
너무 평범해서 기록할 것도 없던 그 일상이 혼자 집에 있는 지금은 좀 그립다.
엄마가 종종 끓여주던 배춧국을 만들어먹어서 그런가.
열시의 남자가 야근하느라 늦는다. 그래서 여섯시쯤 먼저 저녁을 차려먹고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고 거실 테이블에 앉았다. 이 시간에 혼자 집에 있는게 오랜만이라 넷플릭스 대신 음악 틀어놓고 뭐라도 이 시간을 채운다.
어제는 밤에 같이 마을버스 타고 길모퉁이 정류소에 내려 집에 들어오는 길에 남편은 꼭 일년전 이 골목이 얼마나 낯설었는지 이야기했다. 분당에서 빨간 버스 타고 고속도로 타고 강 건너 터널지나 버스 갈아타고 겨우 도착했던 이 동네가 얼마나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을까.
같이 산다는 설렘에 가려졌겠지만 아마 일년 전 우리는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좀 긴장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