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없었지만 별 일을 겪은 것처럼 남편과 더 가까워진 연휴였다. 사박 오일동안 우리는 밤낮으로 산책을 하고, 가족들을 만나고, 낮잠을 자고, 맛있는걸 많이 먹고, 살도 쪘다.

연휴 첫 날에는 8시에 눈이 번쩍 떠져서 긴 산책을 하고 느즈막히 브런치를 먹었다. 밤 사이 물기를 뺀 두부는 스프레드로 만들어서 통밀빵에 바르고 달걀이랑 경수채를 얹었다. 명절 시작 전 채소꾸러미를 픽업해 온 덕분에 연휴 내내 샐러드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날 저녁은 남편이 손수 만든 함박스테이크- 정말정말 맛있었다. 양송이랑 양파 듬뿍 넣고 만든 소스까지 완벽했고. 나는 얇게 자른 가지를 구워 집에 있던 크림치즈 체리페퍼를 말았고, 줄기콩을 볶고, 아침에 먹고 남은 삶은 달걀, 그리고 그린 샐러드를 곁들였다.

영자원에서 종종 재밌는 영화들을 스트리밍 해준다. 이 날 본 것은 사프디 형제 특별전으로 상영한 조쉬 사프디 감독의 <도난당하는 것의 즐거움>. 핸드백 브랜드 홍보 단편을 의뢰받아 시나리오 없이 즉흥적으로 찍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비로소 이 영화를 이해하게 됐다. 영화 보는 내내 기가 막혀하는 남편의 반응이 웃겼다.

시댁과의 가족식사는 새언니가 통크게 쏘신 외식으로 대체했다. 코스요리 중 사진 속에 새우완자가 제일 맛있었다.

밥 먹고 나서는 석촌호수 한 바퀴를 함께 걸었다.

밤산책길에 본 보름달에 소원도 빌고

남편이 좋아하는 귤 한 봉지 사서 집으로 왔다.

연휴 3일차 아침도 초록초록하게

엄마집 가서 요리 도와드리고 보리굴비를 얻어왔다. 엄마표 오이지는 찬물에 담가 짠기를 빼고, 둥글레차를 살짝 부은 쌀밥을 한 숟갈 떠서 보리굴비 한 점이랑 오이지 얹어 먹었더니 정말 맛있었다. 시댁에서 챙겨주신 전까지 차리니 주안상 같아서 모처럼 매화수도 반주로 곁들였다.

차린게 없다는 엄마의 밥상... 형부가 돼지고기 요리랑 마파두부도 해와서 더 푸짐하게 먹었다.

엄마 생일케이크는 오늘의 위로 무화과 타르트 홀 사이즈로 주문

점심을 과식(+과음..)해서 저녁은 가볍게 먹자며 남편이 수영 다녀오는 동안 채소 라자냐를 만들었다. 양파 반개, 당근 1/3개, 샐러리 한 대, 감자 1개, 애호박 1/3개, 가지 큼지막한거 2개, 홀토마토 1통.. 두부크림이랑 모짜렐라 치즈까지.. 가볍게 먹은거 맞겠지

연휴 마지막 날은 가볍게 토스트로 아침을 챙겨먹고 산책을 다녀왔다. 홍제천을 따라 걷다가 성산 2교로 빠져서 성미산 한 바퀴 휙 걷고 오는 코스.

남편이 옷을 입으면 거기 맞춰서 따라 입는 재미

늦잠-아침-산책-점심-낮잠-드라이브-저녁-산책으로 채운 연휴 마지막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