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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게 뭐라고



두오모에서 여느때처럼 바에 앉아 밥을 먹다가 문득 그 전날 조카에게 분유를 먹이며 들었던 생각을 나누고 싶어져서 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언니는 죽을 때까지 음식 한 가지만 먹을 수 있다면 뭘 고를거예요?

언니는 바빠죽겠는데 뭔 헛소리야 라는 얼굴로 날 잠시 바라보았다.

아니 조카를 보는데, 엄마 젖만 먹으면 사는게 무슨 재미일까 싶더라고요.

아직 태어난지 두 달도 안된 조카는 지금의 엄마 젖도 벅차겠지만 만약 인간이 진화가 덜 되어서, 평생 흰 밥만 먹게 된다거나, 우유만 먹게 된다거나, 생태계가 파괴되서 식재료라 할 수 있는 것들의 씨가 말라서 딱 한 가지만 먹을 수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이 상상에 어느새 홀에서 일하던 언니도, 옆에서 밥먹던 일행도 같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는 너는 뭘 먹을건데?

나는 고등어


진심이었다. 나는 고등어를 무척 좋아한다. 퇴근길에 고등어가 너무 먹고 싶어서 술집에 들어가 술 말고 고등어 구이만 시켜서 먹고 집에 간 적도 있다. 구워먹어도 맛있고 조림도 맛있고 심지어 파스타를 해먹어도 맛있다. 하지만 생각이 짧았지. 고등어는 탄수화물과 함께해야 완전체라는 것을..

그럼 나는 버섯

예전에도 버섯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언니의 답변은 참으로 똑똑했다. 양송이 느티 표고 새송이버섯 심지어 그 비싼 송로버섯까지 다 먹을 수 있는거잖아.. 나는 고등어라고 내뱉은 성급한 나의 말을 주워담고 싶었다. 죽을 때까지 짠 고등어를 흰밥도 없이 꾸역꾸역 먹어야 하는 운명을 스스로 택한 것 같았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기 전 나는 후회한다. 그때 뭐라고 대답했어야 했을까. 무얼 먹으면 나는 평생 그것만 먹어도 행복할 수 있을까. 시간은 많고 일찍 일어날 일 없는데 앞으로 먹고 살 걱정은 해야해서 밤늦게까지 뒤척이다가 이런 고민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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