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색 배경에 달걀후라이 네 알. 이 그림이 유달리 귀여워 보이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가 회색 반팔티를 입고 구운 달걀을 먹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이 떠올랐다(내가 아침에 눈 뜨면 가장 먼저 발견하는 부엌 풍경이기도 하다). 그 사랑스러운 모습은 둘째치고 나는 이 그림에서도 귀여움을 발견하는 능력을 지녔지. 관객 쪽으로 삐죽 튀어나온 전선이나 껍질을 깨다가 살짝 건드린 듯 흐트러진 4사분면의 달걀노른자 같은.
호기심이 생겨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본 뒤에야 그녀의 스타일이 ‘귀여움’과는 거리가 굉장히 멀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그녀가 즐겨 쓰는 회색이 좋았다. 그녀가 주로 다룬 소재인 자연 -예를 들면 윤슬, 밤하늘, 거미줄 등-에 쓰인 회색은 음울하다기보단 차분하다. 아니 ‘원래부터 회색이었다’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길거리의 회색빛 돌을 보면서 그것이 우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작가가 즐겨 쓰던 회색은 유년 시절 떠나온 고향인 라트비아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하기 시작한 곳이 캘리포니아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좀 흥미로운데… 햇살 가득한 작업실에 굳이 커튼을 치고 앉아 회색빛에 골몰하고 있을 작가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나. 빛에 반사된 또는 어둠이 드리운 회색이 품고 있는 스펙트럼을 시간을 들여 탐구한 사람의 깊은 성찰 같은 것. 무언갈 시간을 들여 바라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애정이 묻어나오기 마련인가 보다. 나는 그 애정을 귀여움의 렌즈로 바라보다가 남편을 떠올린 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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